정부 “건설·조선업 자세히 심사…퇴출 기업 많을 것” 부채비율 급등하고 실적하락社 위험군…대기업도 ‘불안’
정부와 금융권이 건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분야의 한계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있다. 자생력 없이 정부 지원과 은행 빚으로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zombie) 건설사는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 언제든 퇴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조선비즈가 좀비 건설사들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시리즈로 진단한다. [편집자 주]
“자칫 퇴출당할 수도 있다는데, 매출이라도 최대한 올리려면 없는 현장을 만들어 밀어내기 분양이라도 해야 할 판이네요.”
대형 그룹 계열의 A건설사 주택사업 담당 김모 상무의 한숨이 깊어졌다. 그가 다니는 건설회사는 2011년 이후 작년까지 4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순손실을 기록했는데, 손실액이 이미 작년 전체 금액을 넘어섰다. 4년 반 동안 기록한 누적 순손실은 약 1조원에 달한다.
이 회사는 채권은행이 발표하는 구조조정 대상 명단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 아파트 분양을 서두르고 있다. 올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크게 줄었는데 이를 서둘러 만회하기 위해서다. 김 상무는 “‘퇴출 살생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며 “신규 수주가 늦어지면서 생긴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분양가 욕심도 버리고 최대한 일정을 앞당겨 분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부실기업 퇴출을 염두에 둔 날 선 구조조정을 예고하면서 건설업계가 퇴출 공포에 떨고 있다.
▲ 일러스트=김연수
정부는 건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업황 전망이 밝지 않은 업종의 한계 기업을 자세히 심사하라고 채권은행에 주문한 상태다. 최근 실적이 급격히 나빠졌거나 부채비율이 급등한 건설사들은 올 연말부터 퇴출 기로에 서게 됐다.
정부 관계자는 9일 “과거 기업 구조조정에선 (생존) 전망이 불투명한데도 묻어두고 봐준 기업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는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퇴출 등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기업은 예년에 비해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중소기업 100곳, 대기업도 퇴출당할 듯
은행들은 돈을 빌려준 대기업(금융권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신용위험을 평가한다. 채권은행은 평가 대상 기업을 A~D등급으로 분류한 뒤 C등급을 받은 기업은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하도록 권유하고, D등급 기업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보낸다. C등급 기업이 워크아웃을 거부하면 채권은행은 대출 회수 절차에 들어간다.
기업의 퇴출 여부를 결정하는 신용위험평가 결과는 이르면 이달 말 발표된다. 퇴출 중소기업 명단은 이달 말, 대기업 명단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퇴출 기업이 얼마나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면서도 “중소기업은 매년 100개 정도 나오고 (퇴출) 대기업도 몇 곳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건설업 구조조정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부실기업이 많다고 보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기획 임원은 “삼성엔지니어링(18,300원▲ 300 1.67%)이 올해 3분기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는데, 삼성엔지니어링과 유사한 사업구조를 가진 회사는 사정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며 “공공 발주물량은 줄고 주택 경기는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조조정 잠재 후보군이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 부채비율 급등, 실적 급락한 건설사 ‘퇴출 1순위’
정부와 채권단은 퇴출 기업 분류 기준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지만, 과거 퇴출 기업을 살펴보면 부채비율이 단기간에 급격히 늘고 실적이 나빠진 곳들이 퇴출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에 워크아웃에 들어간 우림건설, 동문건설, 풍림산업, 삼호(15,350원▼ 450 -2.85%), 신일건업, 삼능건설, 월드건설, 이수건설, 경남기업, 롯데기공, 대동종합건설 등 11개 건설사의 부채비율은 2007년 말 평균 324.8%에서 2008년 말 1159.3%(자본잠식에 빠진 대동종합건설 제외한 10개사)로 급등했다. 2007년에 평균 360억원이던 이들 11개 회사의 영업이익은 이듬해 214억원 적자로 바뀌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상장 건설사 중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이 300%가 넘는 곳은 신세계건설(47,550원▼ 400 -0.83%), 고려개발(3,760원▼ 80 -2.08%), 한신공영(15,800원▼ 1,250 -7.33%), 삼성엔지니어링(18,300원▲ 300 1.67%), 에쓰씨엔지니어링(5,470원▼ 140 -2.50%), 금호산업(15,750원▼ 450 -2.78%), 한라(3,740원▼ 55 -1.45%), 삼호(15,350원▼ 450 -2.85%), 이테크건설(133,900원▲ 5,400 4.20%), 코오롱글로벌(14,800원▼ 500 -3.27%), 계룡건설(8,780원▼ 130 -1.46%), 진흥기업(2,180원▼ 100 -4.39%)등 12개다. 신세계건설의 부채비율은 2013년 말 1871.5%에서 작년 말 2282%로 늘었고 고려개발의 부채비율은 이 기간에 591.2%에서 1244.7%로 증가했다.
부채비율이 300%가 넘는 기업 중에 작년에 영업손실을 기록한 회사는 한신공영(-726억원), 에쓰씨엔지니어링(-252억원), 계룡건설(-1037억원) 등 세 곳이다. 고려개발과 금호산업, 코오롱글로벌은 작년에 영업손실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영업이익이 30~60% 급감했다.
◆ 대기업 자회사도 안심 못 해
채권은행은 대기업 계열사를 평가할 때 모(母)회사와 자(子)회사를 구분해서 평가할 예정이다. 모기업의 도움 없이 계열사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되는지 보겠다는 것이다. 개별 평가를 강화하면 대기업 계열사도 퇴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효성(106,500원▼ 2,500 -2.29%)자회사인 진흥기업과 대림산업(71,900원▼ 2,300 -3.10%)자회사인 삼호와 고려개발은 워크아웃 신청 당시 모기업의 도움을 전제로 채권단의 지원을 받았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하면서 모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 살피고 있다”며 “회사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금융권도 지원을 해주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다만 “건설업은 이미 구조조정이 상당 부분 이뤄져서 얼마나 더 퇴출 기업이 나올지는 당장 얘기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채권은행은 매년 구조조정 대상 업체를 골라내지만 2009년과 2010년을 제외하면 규모가 작은 시행사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중견급 이상의 건설사는 거의 없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재무제표만 기준으로 삼아 구조조정 기업을 선정하면 대형 건설사도 여러 곳이 포함되는데 정부가 과연 할 수 있겠느냐”며 “정부는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시장에서 제 기능을 못 하는 기업만 골라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175곳이 채권은행 주도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512곳)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최근 지속된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악화된 데다 정부가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강도를 높이면서 지난해보다 대상 기업이 크게 늘었다. 이르면 다음달 대기업에 대한 수시 신용위험평가 결과도 나올 예정이다. 산업계 전반에 구조조정 회오리가 거세게 불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중소기업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 175개 기업이 C(워크아웃) 또는 D(법정관리)등급을 받았다고 11일 밝혔다. 지난해(125개)보다 50개가 늘었다.
신용위험도는 A~D등급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C, D등급이 구조조정 대상이다. 부실 징후는 있지만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C등급은 70개사다. 지난해보다 16개가 늘었다. 정상화 가능성이 없다며 사실상 ‘퇴출’ 통보를 받은 D등급은 34개가 늘어난 105개사다. C등급 기업은 채권금융기관 주도로 워크아웃을 통해 신속한 금융 지원과 자구계획 이행이 추진된다. D등급 기업은 추가 금융 지원 없이 자체 정상화를 하거나 법정관리 신청을 유도할 계획이다. 상당수의 D등급 기업은 법정관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연구원, '기업부채 현황 및 기업 구조조정 시사점' 보고서 작년 대기업 중 한계기업 비중 5년전 9.3%에서 14.8%로 5.5%P↑ 반면 중소기업은 2009년 13.5%에서 15.3%로 1.8%P 상승 그쳐 한계기업 증가세, 조선 운수 철강 등에서 두드러져 대기업 중심 우리 경제 '시스템적 리스크' 전이 우려
【서울=뉴시스】조현아 기자 = 경기 침체의 늪에서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이른바 '좀비기업'의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이 중소기업보다 3배 가량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일 한국금융연구원 이명활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기업부채 현황 및 기업구조조정에서의 시사점'에 따르면 대기업 중 한계기업 비중은 2009년 9.3%에서 지난해 14.8%로 5.5%p 늘었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중 한계기업 비중이 13.5%에서 15.3%로 1.8%p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이 얼마나 빠르게 늘고 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한계기업은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인 기업으로 매출은 발생했지만,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내지 못하는 곳을 말한다.
여기에 중소기업 중 한계기업의 부채비율은 8.0%p 하락했지만 대기업 한계기업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기준 231.1%로 같은기간 14.8%p 상승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진 우리 경제 전반이 '시스템적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산업별로 보면 과거 우리경제 성장의 주축이 됐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로 경쟁력을 잃게 된 조선·운수·철강 등의 업종에서 한계기업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조선업의 한계기업 비중은 2009년 6.1%에서 2014년 18.2%로 12.1%p 상승했고, 운수업(13.3%→22.2%)은 8.9%p, 철강업(5.9%→12.8%)은 6.9%p 상승했다.
연관 업종 내에 한계기업이 늘어날수록 정상기업의 투자나 고용 등에 부정적인 영향이 전이되고, 나아가 금융권 부실로 이어지면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출 부진과 중국 등 신흥국의 기술 경쟁력 급부상, 미국의 금리인상 등 대외 악재도 한계기업의 부실화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
이명활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저성장 기조 하에 부실기업의 회생 가능성이 이전보다 낮아지고 있고, 대규모의 부실 누적이 예상되고 있다"며 "어느 때보다 선제적인 기업 구조조정 체제의 정착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계기업 지난해말 약 3300개, 5년새 597개 증가…한계기업 부채도 8.8%p↑ 금리 오르면 한계기업 부실-금융권 부실-정상기업 성장 저해 '도미노' KDI, 부실기업 자산 비중 10%p 줄면 정상기업 고용 11만명 안팎 증가시켜 "선제적 기업 구조조정으로 부실 기업 정리 필요한 때"
【서울=뉴시스】조현아 기자 = 경기 침체와 맞물려 늘어나고 있는 한계기업이 '시한폭탄'처럼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더욱이 다가오는 미국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로 그나마 연명하던 한계기업들의 부실화 위험이 더욱 커지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계기업의 부실화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금융권 부실→정상기업 성장 저해'로 이어지면서 우리 경제 전반의 시스템적 리스크로 번질 수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한계기업 구조조정은 미룰 수 없는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6일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못갚는 한계기업은 전체 2만5450여개의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2009년 12.8%(2698개)에서 지난해 15.2%(3295개)로 597개 늘었다. 한계기업은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인 기업을 말한다.
한계기업이 증가할 수록 한계기업이 금융권에서 빌려 쓴 부채도 동반 증가했다. 한계기업의 부채 비율은 2009~2014년 213.6%에서 222.5%로 8.8%p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정상기업의 부채 비율이 95.1%에서 79.2%로 15.9%p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이러한 가운데 금리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더 늘게 되면 금융권이 돈을 돌려받을 길은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부실기업들은 정상기업의 성장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 문제다. KDI(한국개발연구원)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지연의 부정적 파급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13년 중 산업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산업내 '부실기업'의 자산 비중이 10%p 증가하는 경우 정상기업의 투자율과 고용률이 각각 0.53%p, 0.18%p 가량 모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부실기업의 자산 비중이 10%p 줄어들면 정상기업의 고용을 11만명 안팎으로 증가시켰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연말까지 조선, 철강, 해운, 석유화학, 건설 등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 계열이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그동안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부실기업 퇴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8년간 한계기업을 겪은 적이 있는 만성적 한계기업 수가 아직도 전체 한계기업의 73.9%(2014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기업 구조조정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기업 회생에 대한 기대를 갖고 연명시키기 보다는 한계기업에 대한 선제적인 구조조정으로 부실기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기업 구조조정은 추진 주체의 미비, 채권단 합의도출 어려움 등으로 원활히 작동되지 않았다"며 "선제적이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창우 KDI 연구위원도 "금융당국은 지나치게 확대된 국책은행의 금융지원 규모를 축소시키고, 국책은행은 엄격한 기업실사를 통해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법원의 회생정리 절차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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