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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코스파 세대(コスパ世代·cost-performance generation)’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말 그대로 비용(cost) 대비 효과(performance)를 따져 행동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가성비(價性比) 세대’인 셈이다.
일본 사례는 한국에도 좋은 교훈을 준다. 2004년 소니는 초고가 라인 가전 브랜드인 퀄리아(Qualia)를 선보였다. 프로젝션TV가 1만5000달러 수준으로 당시 일반 제품의 10배에 달했다. 초고가 브랜드 출시에 전 세계 기업이 주목했으나 결론은 실패였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사치와 고급 소비의 거품이 꺼져가는 현실을 경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국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소비자는 그 어느 때보다 가격 대비 효율성을 꼼꼼하게 따진다. 브랜드를 떼어내고 품질로 승부를 건 유니클로나 다이소, 이마트 등이 성장세를 이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들은 소비자가 체감할 만한 명확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사치·브랜드 선호서 가치소비로 급선회
성능 좋은 중국산 등장·SNS 정보 공유 확산 ‘가성비 시대’ 이끌어
소비 주도층 없고 디플레이션 이어지자 기업도 고가 제품 출시 주저
“사치의 시대는 가고 가치의 시대가 오고 있다. 소비자는 이제 브랜드가 약속하는 환상을 믿지 않는다. 소비자끼리 소통하며 각자가 만족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한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가 쓴 ‘트렌드 코리아 2016’에 담긴 내용이다. 그는 “저성장·경기 침체 국면이 장기화돼 소비를 줄이는 추세가 뚜렷하다”며 “소비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전 소비 생활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방안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김 교수가 말하는 방안이란 가성비를 추구하는 삶이다. 가성비는 ‘가격 대 성능비(價格 對 性能比)’의 줄임말이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 이상으로 만족도가 높을 때 흔히 ‘가성비가 좋다’고 말한다.
물론 기준이 딱 정해져 있지 않다. 대체로 가성비에 대해 다수가 동의할 만한 공통의 수준이 있으나, 가격과 효용에 대한 생각은 개인마다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10만원짜리 점퍼를 구입했다고 치자. 어떤 이는 싸게 좋은 제품을 샀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가성비가 나쁜 제품이라고 혹평을 내릴 수 있다. 심지어 초고가 제품에 대해서도 해석이 달라진다. 포르쉐는 대체로 가성비보다는 브랜드 파워에 방점이 실린다. 그러나 어떤 이는 8000만원짜리 포르쉐 SUV ‘마칸’에 대해 싸고(?) 좋은 제품이라 평가한다. 성능 뛰어난 럭셔리 제품이 1억원 넘지 않는 가격이라면 괜찮다는 것이다. 포르쉐 측 역시 ‘가성비’라고 딱 지칭하지는 않지만 ‘대중적인 럭셔리’라는 개념으로 효율성을 따지는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소비자가 가성비를 따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경기 침체다.
홍성국 미래에셋대우 사장은 한국을 “저성장·저금리가 고착화한 전환형 복합불황 시대”라고 규정짓는다. 전환형 복합 불황이란 저금리에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고 저성장·저물가가 이어지는 시대를 말한다. 실제 기준금리가 2010년 6월 3.25%에서 2016년 6월 1.25%까지 떨어졌지만 국민들은 돈을 쓰지 않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2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을 나타내는 평균소비성향은 70.9%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1분기 이래 최저였다.
홍 사장은 “1929년 10월 24일 대공황 이후 80년 만에 처음으로 인플레이션 시대에서 디플레이션 시대로 전환했고 우리는 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저성장 기조가 끝나지 않는 한 소비자 머릿속에 ‘가성비’라는 단어가 계속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도 고민이 많다. 디플레이션 시대에는 제품 가격이 안정적으로 내려간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자사 제품과 서비스만 눈에 띄게 가격을 올리기 힘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자가 소득 감소로 소비를 줄이는 가운데 기업은 디플레이션으로 가격을 특별히 올릴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평가했다.
꽤 괜찮은 ‘중국산(made in China)’의 득세도 가성비 시대를 이끈 요인이다. 특히 중국 IT기업 샤오미는 가성비 시대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그간 중국산은 조잡하고 성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해 낮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가성비’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샤오미의 등장과 함께 중국산 제품이 꽤 쓸 만하다고 평가하는 20대 젊은 층이 늘어났다. 샤오미는 통상 5만원 안팎인 1만㎃h 보조배터리 시장에서 샤오미가 1만5000원짜리를 내놔 크게 히트 쳤다. 샤오미뿐 아니라 화웨이, ZTE 등도 ‘짝퉁(가짜)’ 제조사 오명을 뛰어넘어 품질 좋은 스마트폰으로 국내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전 산업에서 ‘가성비 높이기’ 특명
자동차도 연비 좋은 모델 잘 팔려
장기 저성장…가성비시대 오래갈 듯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도 크다. 소비자끼리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가격과 성능을 쉽게 판별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최근 SNS에는 IT, 자동차, 음식, 식품, 화장품, 부동산 등 전 산업에 걸쳐 ‘가성비 갑 리스트’가 공유되기도 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나가는 가성비 바람은 단순히 최저가 상품 검색이 아니라 최고의 성능을 찾아가는 현명한 소비”라고 평가했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트렌드는 산업 전 부문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산업이 자동차다. 지난 6월 개별소비세 종료와 함께 자동차업계는 내수절벽에 부딪혔다. 이를 돌파하고자 각 브랜드들은 가성비 높은 모델을 내놓으려 골몰하고 있다. 르노삼성은 SM6 디젤을 내놓으며 ‘가성비’를 중시하는 고객을 겨냥해 성공했다. SM6 디젤은 중형 세단에서는 드물게 17㎞/ℓ라는 높은 연비를 자랑한다. 게다가 1.5ℓ 배기량 엔진으로 자동차세도 경쟁 모델보다 낮다.
의류업계에서도 가성비의 바람이 거세다. 의류업계는 유니클로 브랜드의 출연이 ‘가성비 시대’를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브랜드를 버리고 품질과 가격 경쟁력에 집중한 유니클로는 2005년 한국에 처음 진출한 지 10년 만에 1조원 매출을 넘어서며 ‘가성비 파워’를 한껏 보여줬다. 의류업계에서 SPA 브랜드만 호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가성비 시대와 관련 깊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1~2인 가구 증가, 청년실업 증가, 소비 성향이 낮은 노령층 증가 등 폭발적인 성장을 이끄는 소비 주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며 가성비 추구는 소비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가성비 시대 이후의 소비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의 미래’라고 평가받는 일본의 최근 모습에 비춰 짐작해볼 수 있다.
가성비 소비를 넘어 앞으론 소비 자체를 안 하는 ‘무소유’의 시대가 다가오는 모양새다. 일본에선 공유경제 붐이 일어나며 소비 없이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 일본의 야노경제연구소에서는 일본 공유 시장 경제 규모가 2014년 232억엔에서 2015년 290억엔까지 커질 것으로 추정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상품, 공간은 물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돈까지도 공유하는 ‘합리적 무소유’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 베스트셀러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가성비, 무소비에 이어 이젠 ‘있던 물건까지 버리는 시대’가 올 것이라 주장한다. 단순히 적게 갖는다기보단 꼭 필요한 것만 보유하는 생활양식이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란 전망이다.
韓 가성비 이전에 日 코스파 있었다
호황 못누린 日 20대, 가성비는 선택 아닌 필수
가성비를 좇는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건 한국뿐 아니다. 경기 불황과 저성장 기조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며 나타난 만국 공통 현상이다. 특히 일본은 지금보다 5~6년 전에 이미 가성비 소비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크게 일어났다. 일본에선 ‘가성비’가 아니라 ‘코스파’란 이름으로 불렀다. 일본 젊은 세대에겐 익숙하다 못해 생활 전반에 깊숙이 뿌리 내린 단어다.
코스파란 ‘코스트-퍼포먼스(cost-performance)’의 일본식 약어다. 해석하면 ‘비용(cost) 대비 효과(perfomance)’다.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한국의 가성비와 작명 방식부터 꼭 같다. 코스파는 2011년 일본 닛케이신문이 당시 20대 젊은이들을 가리켜 ‘코스파 세대’라고 이름 붙이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의 끄트머리에서, 지갑 얇은 젊은이의 꼼꼼한 소비 행태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코스파의 특징 역시 한국의 가성비 소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가 제품 구매를 자제하고, 제품 기능과 내구성을 우선시했다. 절약 정신이 투철해, 신제품 구입 대신 중고와 렌털 서비스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코스파 세대는 일본 경기 침체의 주범 중 하나로 몰린 적도 있다.
그렇다고 코스파 세대를 마냥 수전노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쓸 땐 또 쓰는 게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이다. 새로 개발된 신기술 제품을 사거나 취미·여가 생활엔 돈을 아끼지 않는 ‘가치소비’ 경향이 두드러졌다. 사회공헌 의식도 강해 친환경 상품이나 영세 상인 수공예품은 비싸더라도 제값 주고 구입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코스파 세대는 일본 경기 호황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스스로 부유하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물질 소유에 달관했다는, ‘사토리 세대’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 이들에게 코스파는 날 때부터 내면에 학습된 생활양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출처ㅣ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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